자기 객관화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 

나는 지금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까. 

나는 지금 어떤 것을 우선순위로 두고 살고 있을까.

눈에 보이는 맛집 찾기, 아이돌 스케줄 확인하기 등의 그런 것들 말고.

실제로 나의 마음 깊숙한 곳에선 어떤 것들을 신경 쓰고 있을까?

 

나는 심리테스트를 좋아한다. 

내가 어떤 것을 고르느냐가 나의 상태나, 나의 선호를 알 수 있다는 그 단순한 원리가 나 스스로에 대해 알게 해 주고, 

이는, 그다음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나의 성향을 반영한 조금은 발전된 형태의 선택을 돕는다. 

 

심리적으로 사람은 자신이 필요한 것만 필터링하여 보게 되어 있다. 

제 아무리 근거와 논리를 따져 판단을 하고 선택을 한다 하여도, 실제로 모든 사람이 판단을 할 때 70%는 감정에 기반한 선택을 하게 된다고 한다. 

 

결국 사람은 자기 기준에서 자기 합리화를 하고 살아간다는 것.

또한 자신의 판단을 기준으로 옳다 생각하는 것을 믿고 또 살아간다는 것.

난 사람의 본능적인 습성을 믿는다. 

그렇기에 사람의 심리적인 행동 패턴을 믿는다. 

사람의 잠재된 생각은 행동으로 보이게 되어 있다.

 

실제로 난 책을 그렇게 잘, 즐겨, 읽는 편은 아니다. 

스스로 난독증이 있는 것 아닐까 느낄 정도로 책을 읽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리고, 

필요에 의한 독서가 아니라면 딱히 책을 펼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서관, 서점을 매우 좋아한다. 

어릴 때는 좋은 이유에 대해 열심히 근거를 갖다 붙였다. 책 냄새가 좋아서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만들어보기도 했고, 그냥 분위기가 좋아서 라는 이유도 말해보았다. 

 

하지만, 요즘 들어 나의 기억 저편에 있는 단편적인 장면들을 모아 보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나에게 서점이란, 나 스스로의 마음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실제로 난 여전히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을 모른다. 

인터넷이나 유튜브에서 '좋은 책을 골라서 읽으세요'라는 이야기들이 내 인생에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것. 

내가 책을 고르는 방식은 그저 마음에 드는 책 제목을 골라, 일단은 읽어보는 것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서점에 가면, 종일 하는 일은 서점을 뱅글뱅글 돌면서 마음에 드는 책 제목을 찾는 일이다. 

 

2007년 엄마가 돌아가신 해, 서점에서 고른 책은 '상실 수업'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2010년 도피성 일본 유학을 갔다가 동일본 대지진 폭격에 부들부들 떨며 귀국 한 시점, '불안'이라는 책을 구매했었다.

2011년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시점 자기계발서적을 많이 읽었다. 

실제로 사회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트렌드에 관련된 책 등 업무에 관련된 책들만 열심히 의무적으로 구매하고, 또 읽었다.

 

이렇듯,  서점에서 내 눈에 띄는 그 책을 구매하는 나의 습성은 그 당시의 나의 감정과, 나의 생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실제로 책을 구매하고 나면, 나는 현재 나의 결핍에 대한 인지, 나의 감정에 대한 인지를 하는 편이다. 

그저 손가는대로, 맘 가는 대로 움직이는  행위가 나를 파악할 수 있는 프로세스가 되어 주는 곳. 

그곳이 서점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나의 감정에 변화가 생겼음을 깨달았다.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특히 요즘 책들은 직설적인 제목들이 많아 나의 감정 인지가 더욱 확실하게 되는 것 같다. 

사회의 우울함을 앞세운 책이라 경멸의 눈초리로 보던 시기는, 나의 감정을 덮어두고 앞으로 전진하는 시기였다면, 

지금은 내 감정을 돌아보아야 할 시기가 도래했음을 느낀다. 

 

지금의 나는 삶에 조금 지쳐있음을 느낀다. 약간은 우울함을 느낀다. 

 

이렇게 자기 객관화하는 과정을 거쳐 나는 또 스스로를 다독이고 다시 건강한 삶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껏 그러했듯

 

 

 

 

 

 

 

 

 

 

 

 

 

 

 

 

 

 

 

 

 

 

 

 

 

'일삶이요 > 일기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0년 첫날의 우울  (1) 2020.01.03

2020년의 새해를 맞이했지만, 올해의 첫날은 그닥 유쾌하지 않다. 

이나이 먹어 무슨 청승인가 싶지만, 

평소였으면 그저 그렇게 넘어갔을, 연말의 몇몇 사건들을 계기로

견고하게 쌓아놓았던 성이 무너진 것 처럼 마음속에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때가 그리워 졌다. 

20대의 나는 조금 더 여유롭고 조금 더 나에게 충실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슬프면 엉엉 울었고, 

스트레스를 핑계삼아 나홀로 보내는 시간을 마련해 여유를 즐길 줄 알았다. 

남들만큼 치열하게 살기 싫어 스스로를 다독이며 현실에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갔다.

오로지 혼자였기에 가능했던 시간들이었다.

 

문득 돌아보니 결혼을 한지 햇수로 4년차가 되었고, 아이는 두돌을 맞이했다.

시간이 참 빠르다. 

 

나의 인생을 돌아보기에도 바쁜 시기에, 집안을 신경써야하고, 아이의 케어와 교육을 신경써야하고, 

정많은 시부모님과 혼자인 아빠, 물가에 내놓은 아이같은 신랑까지 챙겨야했다. 

맞벌이해야하는 상황이기에 커리어를 위한 학업까지 시작했다. 

회사에 학교에 육아에.. 

다만, 이 모든 것들은 순차적으로 서서히 늘어났기 때문에 난 몰랐나보다.

따뜻한 물에서 유영하다 도망칠 순간도 못찾고 끓는 물에 익어버릴 개구리 마냥, 

나도 모르게 바쁘디 바쁜 생활에 적응해갔다. 

 

언제부턴가 내가 알지도 못한 사이에, 나라는 사람이 사라졌다.

다들 내게 욕심이 많다고 했기에, 나도 내가 욕심이 많은 거라 생각하며 바쁘게 살았다. 

늘 반성하고 반성하며, 내 욕심을 챙기기 위해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할일을 쳐냈고,

내가 여유롭게 살아왔던 그 모든 시간들을 보상하기라도 하듯 너무나 열심히 살았다. 

 

언제부턴가 난 모든 이들에게 너그러워졌다.

언제부턴가 난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이 사라졌다. 

언제부턴가 어떤 상황이 되어도 화가 나질 않았다. 

언제부턴가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고 내 눈을 가렸다. 

언제부턴가 후회라는 단어를 증오하며 현재의 삶에 불을 켜고 쉬지 않고 움직였다. 

나는 내가 감정 조절능력이 높아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나보다. 

나는 너무나도 감정적인 사람이었기에, 내 감정에 소모하는 에너지를 줄여야했고, 

본능적으로 나의 감정을 왜곡시키고 현재에 맞게 세뇌시켜왔다.

그저, 자기합리화에 능했던 나는, 스스로의 감정을 이성적으로 정의하고 이를 세뇌시키며 살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욕심이므로 나는 즐거운 것이라 스스로 세뇌시켰고,

내가 욕심이 많아 이 고생을 하는거니, 남한테 티내면 안된다 스스로 세뇌시켰다.

과거를 돌아보면 내 감정이 일렁이니, 이를 감추기 위해 과거를 싫어하도록 세뇌시켰다. 

그렇게 꾹꾹 눌러담아놓았나보다. 

 

한 해가 가고 새해가 다가오는 시점 문득 뒤돌아보니,

내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의 무게에 짓눌려 살고자 발버둥치는 나만이 남았다.  

 

어떻게 되돌려야할까. 

어떻게 이 책임감에서 벗어나 나를 돌아볼 수 있을까. 

 

일기를 써야겠다.

 

 

'일삶이요 > 일기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기 객관화 방법  (0) 2020.01.16